앤드류 가필드는 매우 매력적이었으며 스파이더맨 캐릭터에 매우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처음 시빌워에 톰 홀랜드가 스파이더맨으로 얼굴을 드러냈을 때 매우 실망했었다. 그는 '나의 스파이더맨'이 아니었으니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나는 그저 마블에 대한 의리로 이 영화를 보러 갔었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올 때, 톰 홀랜드는 '나의 스파이더맨'이 되어 있었다. 쉽게 변절한 나를 위한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스파이더맨의 작중 나이를 생각하면 83년생의 앤드류 가필드는 이제 무리일지도 모른다. 96년생. 이제 막 20살이 넘었음에도 아직 소년같이 앳된 얼굴의 그는 이 영화에 정말 잘 어울리는 배우였다.
웃프지만 누구보다 나은 히어로
항상 그래왔듯 이번에도 스파이더맨은 가난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나의 현실에 가까웠다. 인턴이라는 이름 아래 '을'일 뿐일 그는 아이언맨의 작은 행동에도 크게 좌지우지되며 무엇이든 열심히 할 준비가 되어있는, 취준생인 우리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웃기면서도 슬펐다. 스파이더맨을 흔들었던 것은 히어로가 되고픈 마음이었다. 그는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아이언맨처럼 잘나가는, 캡틴아메리카처럼 유명한. 하지만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 자신이 이미 히어로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언맨처럼 돈이 많고, 캡틴아메리카처럼 유명해야 히어로인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위험에 처하더라도 타인을 구하기 위해 작은 몸을 내던지는 것. 그 부분에 있어 수트가 있든 없든 망설임 없이 달려드는 저 작은 사내는 히어로임에 틀림없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결국 기자회견을 거절한 그는 아이언맨이 말한 대로 그보다 '나은(Better)' 히어로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좌지우지 흔들리는 것은 우리의 욕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더 높은 위치에 가고 싶어서. 그게 '행복'인 것 같으니까. 유명하고 돈이 많은 것이 꼭 히어로가 아닌 것처럼, 꼭 유명하고 돈이 많아야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행복은 이미 우리 곁에 있는데, 그저 우리가 그 사실을 잊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악으로 선을 이기는 히어로
내가 히어로 영화를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악당이 혼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아무래도 현실에서 그런 모습을 보기는 힘드니까.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악당은 혼이 나되, 정당한 처벌로 혼이 난다. 스파이더맨은 주변이 불구덩이가 된 상황에서 그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벌 받아야 마땅한 악당이었고, 심지어 본인을 죽이려고 여러 번 시도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은 그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고 예쁜 메모와 함께 살려 두었다. 어쩌면 이 점이 스파이더맨의 작중 나이가 어린 이유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찌든 어른이 아닌, '그래도 죽이는 건 나빠'라고 말하는 착한 아이. 또한 악당을 저지하려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에서 그를 향한 혐오나 증오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그를 멈추려고만 할 뿐.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모습은 이런 것일까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의 아버지라서...는 아니겠지, 설마). 부시고 혼내주는 것을 보고 난 후의 후련함과는 다른, 무언가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너와 레벨이 달라', '나는 너랑 같은 놈이 아니야', '너는 나쁜 놈이지만 나는 착한 사람이거든'과 같은.
과연 악당은 누구인가
이 영화를 본 어른이라면 아마 누구나 살짝은, '저 악당도 사정이 딱하네, 억울할만한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기업-그게 심지어 아이언맨이다-의 횡포에 억울하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소시민. 자식과 아내를 책임져야하는 가장. 누가 쉽게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의문이 든다. '안녕, 나는 아이언맨이야.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지. 여러분에게는 부와 명예가 없지만 스파이더맨처럼 순수하고 예쁜 마음이 있어. 그게 나보다 나은 것이야. 그러니 그것에 만족하렴. 나를 나쁘게 생각하고 내가 가진 걸 뺏으려고 하는 사람은 악당이야. 그리고 영화를 봤겠지만, 어차피 그런 시도를 하더라도 뜻대로 되지 않을 테니 애초에 포기하렴.' 설마 이런 것은 아니길 바란다. 부와 명예를 가진 자 중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있음을 비꼬는 의도이길 바란다. 나는 사실, 그 악당의 마음이 백분 이해가 된다. 아직 그다지 긴 인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이미 부조리한 일은 충분히 겪었으니까. 억울하고 화가 나는 마음이 매우 이해가 되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차마 '죽어라, 이 놈. 혼 좀 나봐라, 이 놈!'할 수는 없었다. 그가 택한 방법이 정당하지 못했으며, 옳지 못했음에 분명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나눠준 포스터에 등장한 그에게 적힌 'BAD DUDE'는 괜히 마음이 아팠다. 아주 조금이라도 아이언맨이 반성하거나, 그에게 보상하는 내용이 등장하길 바랐으나, 이 영화는 아쉽게도 너무 현실적이라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히어로물 영화를 본 것 치고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물론 가볍게 보기에 좋은 영화임에도 틀림없다. 비록 우리에게 소시민의 행복을 강요하는 듯 느껴지는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 의미는 사실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었다. '못' 갖는 것과 '안' 갖는 것은 매우 다르다. 그 차이가 기자회견을 '안'하고 돌아서는 스파이더맨과 우리를 자신의 삶에서 만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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